애 낳고 우울증 걸린 35세 女교사, 학교에 소문나…
[중앙일보]가벼운 우울증 정신병서 뺀다
110만 명 ‘정신병자 낙인’ 지워져 …올해 안에 가벼운 우울증 환자 110만여 명은 법률상 정신병 환자에서 제외된다. 전체 정신질환자 577만 명의 20%에 해당한다. 이렇게 되면 가벼운 우울증을 앓아도 의사·약사·영양사·의료기사·조종사(배) 등의 전문직종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민간보험 가입도 쉬워진다. <관계기사 8면>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9일 “올해 안에 정신보건법을 개정해 환청·망각 같은 심한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사람만 정신질환자로 분류하기로 했다”며 “우울증은 선진국에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로 보는데 한국은 ‘정신병’으로 낙인찍어 치료를 기피하고 사회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어 법을 고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간보험사에 정신질환자 가입을 거부한 사유를 입증할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종합대책을 이달 안에 내놓을 예정이다.
지금은 정신질환의 범주가 매우 넓다. 정신병에다 인격장애·알코올중독·약물중독 등을 포괄한다. 이 범주(질병코드 F)에 속하는 질병이 400여 가지에 이른다. 요즘 급증하는 아동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도 여기에 들어갈 정도다. 심한 정신분열증(조현병)이나 가벼운 우울증이나 똑같이 ‘정신병자’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국가공무원법·의료법 등 77개 법에서 정신질환자의 면허증·자격증 취득과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직장 생활에도 큰 지장을 받는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인 A(여·35)씨는 “아이를 죽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심한 산후 우울증을 앓았다. 휴직 기간에 완치됐지만 학교에 소문이 돌면서 왕따를 당해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민간보험사들도 정신질환자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거나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10만 명당 31.2명)인 반면 정신질환 치료율(15.3%)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래서 복지부는 환청, 망각, 심한 기분장애, 비논리적 행동의 지속적 반복 등 주요 중증 정신질환 증세를 보일 경우만 정신질환자로 분류할 방침이다. 또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걸린 공황장애, 불안장애, 불면증 등의 정신질환도 중증 환자만 남기고 대부분은 법률상 정신질환자에서 빼기로 했다.
서울대 의대 김윤(의료관리학) 교수는 “감기와 비슷한 질병인 우울증에 더 이상 주홍글씨를 찍어 차별해서는 안 된다”며 “법 개정을 계기로 드러내놓고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후속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